새로 전세 들어간 집은 지금껏 내가 살아본 집들 가운데 가장 높은 16층에 있어서 전망이 좋다. 더군다나 바로 옆에 OO교회 제5주차장이라고 현수막 걸린 널따란 공터가 있어서, 북향이지만 확 트여 있다. 얼마전 OO교회 제5주차장 옆 또 다른 공터에 흙파기 공사가 시작되었고 덤프트럭이 부지런히 제5주차장 가장자리에서 차를 돌려가며 흙을 퍼날랐다. 당연하게도 OO교회 제6주차장이 만들어지겠거니 했는데, 아님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며칠전 제5주차장 주변에 쇠로된 펜스가 둘러 쳐졌다. 주말을 제외하면 늘 텅텅 비어 있는 주차장을 펜스로 막은 것이다. 공사 차량들은 좁은 이면도로와 출입구를 후진으로 들어와 흙을 가져가야 했고, 가끔 포크레인을 들어내 가거나 기중기를 들여 올 경우에 그 큰 트레일러를 낑낑대며 펜스 다칠까 조심하며 공사장으로 들어오곤 했다. 2차선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고등학교와 한 개의 중학교, 조금 떨어진 곳에는 한 개의 초등학교가 있어서 학생들 왕래가 잦은 곳인데, 공사 차량이 길가에서 대기하거나 차를 돌린다고 장시간 좁은 이면 도로를 점거하고 있는 모습이 영 불안해 보인다. 비록 공사장이 내가 사는 주상 복합 오피스텔과 딱 붙어 있지만, 위에서만 바라봐서 지금도 난 그 공사장이 뭘 만드는지 모른다. 아침 6시 정도부터 부지런히 땅을 파고 있다는 것과, 교회 소유가 아닌 그 무언가를 지으려 한다는 것 밖에는...
마주보고 있는 OO교회의 담벼락은 전구로 화려하게 꾸며져 밤에도 볼거리를 제공하여 보기는 좋은데, 교회가 추구하는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도 있지 않았나.. 아주 소극적인 사랑만 베풀어도 이웃의 공사가 훨씬 수월할텐데...
한달 전쯤, 작가이신 장인어른이 DVD 한장을 내미셨다. KBS에 아는 사람이 보라고 준 것이라고.. 고 이태석 신부 어쩌고 씌여 있었고, "울지만 톤즈"라고 씌여진 제목이 보여서, 단순히 천주교 포교와 관련되어 톤즈라는 아이 이야기인가 보다 생각했다. 또 며칠후 그것이 극장 개봉 예정이라는 것을 인터넷에서 봤을 때도, 그게 그거였나 근데, 뭘 그런 걸 상영하나 생각하고 말았다. 어제 밤에 이태석 신부와 관련된 TV 프로를 보다가 톤즈가 수단의 낙후된 한 지역 이름이라는 것과 그곳에서 이태석이라는 분이 행하신 숭고한 일들을 접하게 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태석 신부의 말... 예수님이 이곳(톤즈)에 오신다면 성당을 먼저 지을까 학교를 먼저 지을까. 당연히 학교일 거다.... 세상에는 정말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종교를 떠나서 인종을 떠나서..
종교와 담 쌓고 살고 있지만, 기독교, 교회, 목사, 장로 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거북하다. 하지만, 천주교, 성당, 신부 라는 말은 듣게 되면 차분해지고 약간의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서울시를 봉헌하겠다고 시장의 신분이면서 장로라는 이름으로 행한 말 때문이 아니라, 대학시절 명동성당을 서성였던 기억 때문이 아니라, 지금껏 살아 오면서 겪고 들었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종교에 대한 느낌을 만든 것 같다.
80년대 초, 신도안이라는 지역이 북한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천혜의 요새이며, 풍수지리상 수도가 될 곳이라고 하여 주민을 강제로 이주시킨 적이 있다. (사실, 조선의 수도가 될 뻔했다.. 신도안내에 대궐터라는 지명이 있고, 짓다만 각종 석축들이 널려 있어 놀이터로 삼고 자랐으니까.. 지금 그 신도안엔 육해공 3군 사령부가 자리잡아 온갖 별들이 잔뜩 살고 있다.) 순박했던 촌 동네 어른들은 돈 몇 푼 쥐고 고향 떠나 타향살이를 했는데, 그때 우리 부모님도 某 성씨 집성촌에 자리를 잡았다. 그 때가 중학교 2학년이었다. 길가 집을 구했지만, 담은 허물어졌고, 지붕은 낡았지만, 손기술 좋은 아버지는 거의 혼자서 집을 보수하셨다.. 심지어 나중에는 그 무거운 석까래까지 설계하고 자르고 지붕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올리셨으니. 근데, 시시때때로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있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떼로 몰려와서 먼지가 난다느니, 시끄럽다느니 시비를 걸었고, 단체로 민원을 접수해서 불려다니게 만들고... (그 시골 촌동네에서 비전문가 한 사람이 집 보수하겠다고 뚝딱거리고 있는데 먼지가 나면 또 얼마나 날 것이며....) 그때부터 어머니는 "예수쟁이"에 치를 떨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 왠지 모를 고상한 것을 기대하게 된다. 종교가 제시하는 가르침을 늘 듣고 행하는 사람들이라면 비종교인 보다는 좀 더 나은 인격이나 뭔지 모를 좀 고상한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나도 그러니까.. 그런데, 그 종교인들이 더 심하게 괴롭히니 어머니 입장에서는 어떠했을까.. 성씨도 다르고, 타지에서 들어와 교회도 안 다니는 사람에 대한 텃세가 무척 셌다고 볼 수 있다. 다행이 내 중학교 은사 사모님의 노력과 계라는 것을 통해 차츰 누그러뜨릴 수 있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수 년간 괴롭힘을 당했으니.. 지금도 그 "예수쟁이" 이야기가 나오면 손사래를 치신다.
군 시절에는 신영복 교수의 말 따라, 종교가 없을 지라도 대부분 "떡신자"가 된다. 종교의 자유를 허용한다는 이상한 방침에 의거하여 원하지 않아도, 주말이면 고참들 뒷치닥거리가 있을 지라도, 이등병들은 차출되어 세 개 종교를 순례해야 한다. 그 시절 가장 좋았던 것은 절이었다. 절은 위병소 밖에, 그래봐야 십수 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일단 군대 영내를 벗어나서 있다는 점과 묵상의 이름으로 눈을 감고 쉴 수 있고, 끝나면 초코파이까지 주기 때문이었다. 성당은 군 내에 있었지만, 과자나 여타 지급되는 것의 품격이 있었다. 다만 자꾸 일어나서 옆사람과 인사하라고 해서 귀찮기는 했다. 교회도 영내에 있었지만, "떡신자"인 내게 있어서는 기피대상이었다. 영내에서 먼 곳에 위치하기도 했고 끝나고 주는 게 형편없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눈 길을 걸어가 참석했는데, 싸구려 주스 한잔 얻어 먹은 기억이.. 군종은 착한 성품의 성실한 고참이었더랬는데.. 떡신자 시절에도 교회는 내게 제일 안 좋은 인상을.. ㅋㅋ
대학교 시절 가장 후회되는 것은 세상을 폭넓게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군대 시절 가장 후회되는 것은 말년에 기타를 배우지 못하고 나왔다는 것인데, 아마도 죽을 때쯤이면 종교를 갖지 못한 게 후회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종교를 갖게되면 아마도 천주교가 되지 않을까 싶다.
[업데이트 : 2011년 2월 16일] 요즘은 가끔 땅파는 소리가 들리지만 땅은 다 판 것 같다. 궁금한 마음에 무슨 공사인지 확인을 했는데, 내 생각이 틀렸다. 교회소유 건물이다. 재미난 것은 공사 안내에 쓰여 있는 말.... XX교회 사회복지관 신축공사... XX교회는 OO교회와 왕복8차선을 사이에 두고 약간 비스듬히 위치해 있는 교회이다. 우리 집에서 보면 OO교회, XX교회 사이에 ZZ교회가 있어 삼각편재로 펼쳐져 위치하고 있다. 어쨌거나 인근 교회 복지관 공사라니 뒤늦은 펜스 공사가 더욱 아이러니하다.

